클로 버추얼 패션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3D 피팅과 가상현실409(VR409) 기반의 패션 디자인 소프트웨어(SW)를 세계 시장에 수출한다. 클로의 오승우 대표는 나와 함께 KAIST에서 인공지능(AI)을 공부했다. 나는 전공한 AI를 외식에 접목했고, 오 대표는 패션에 접목해 SW 시장을 만들어 냈다. 공부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AI는 어떤 오프라인 분야와 접목하더라도 장기간 몰입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젠 AI를 접목하지 않으면 투자도 잘 안 되는 상황이다.
슈렉이나 쿵푸 팬더 캐릭터는 단벌 신사다. 배트맨이나 슈퍼맨도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망토만 휘날린다. 그동안 정교한 가상 의상 제작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로의 기술이 집약된 SW로 '겨울왕국' 엘사 드레스가 탄생했다. 현재 클로의 주요 파트너사는 드림웍스, 디즈니, 블리자드 등 해외 유명 애니메이션·게임 업체다. 컴퓨터그래픽(CG) 회사뿐만 아니라 실제 의상을 제작하는 패션 회사들도 클로의 기술을 사용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루이비통이 대표 사례다.
패션은 SW와의 접목을 넘어 사물인터넷80(IoT80)과의 결합도 활발하다. 구글이 패션업체와 협력해서 만든 스마트재킷에는 '자카드'라는 첨단 기술이 접목돼 있다. 옷의 소매 부분에 사람의 동작을 인식하는 자카드 태그 센서가 들어 있어서 소매를 터치하기만 해도 듣고 있는 노래를 바꾸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내비게이션 길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다른 의류업체에도 기술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제 우리 옷이 스마트 기기를 제어하는 터치패드가 될 것이다.
패션은 VR와도 접목한다. 곧 출시를 앞둔 이스킨이라는 전자 옷은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센서를 14개 내장해 이들 센서를 통해 움직임을 함께 입·출력할 수 있다. 티셔츠가 VR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옷을 입는 것만으로 VR 기반의 격투, 댄스, 게임 등을 훨씬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운동할 때의 신체 상태도 자동으로 파악해 주고 세탁도 가능하다고 하니 다양한 일상생활에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기분과 상황을 인식해서 옷이 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텔은 착용자의 감정에 따라 디자인이 변형되는 반응형 의상을 선보였다. 체온, 호흡, 스트레스 수치 등을 감지하는 큐리 모듈을 탑재, 색깔과 디자인을 바꾸는 원리다. 해외의 한 스타트업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발광다이오드(LED)로 원하는 슬로건이나 이미지를 표시해 주는 디지털 티셔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실시간 소통을 하듯 티셔츠로 즉각 소통이 이뤄지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패션도 AI, VR, 증강현실(AR) 기술을 접목하며 진화한다. 원천 기술에의 접근은 어렵더라도 트렌드를 예측하고 응용해서 새로운 시장을 정의해 내는 클로 같은 세계 수준의 한국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하길 기대한다.